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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담배를 피는 사람들은 담배를 못 끊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담배를 처음 피울 땐 기분이 좋아져서 폈지만, 중독되고 나면 안 피면 기분이 안 좋아지고, 펴야 정상 기분으로 돌아온다고, 그래서 끊을 수 없다고.
카페인도 그런 것 같다. 처음엔 피곤해서 시험 기간 같은 때에만 졸음을 떨치기 위해 마셨지만, 지금은 하루에 아메리카노 한 잔 이상 마시는게 일상이 됐다.
안 마신 날은 하루종일 피곤해서 컨디션이 떨어진다. 최소한 하루에 카페인 140mg은 먹어 줘야 버틴다. 피곤할 땐 거기에 샷을 한번 더 추가하거나 커피를 하루에 서너잔 씩 마시기도 한다. 이젠 밤에 커피를 마셔도 그 날 잠은 잘 온다.
근데 또 아메리카노가 제일 맛있다. 칼로리도 없고, 그냥 맛있어서 먹고, 포션처럼 먹는다.
아메리카노가 직장인과 대학생의 포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내겐 HP 포션같은 존재.
어릴 땐 아메리카노를 왜 먹는지 이해가 안 갔다. 쓰기만 하고 맛도 없고 그냥 달달한 편의점 커피우유가 맛있다고 카페 가는걸 사치라 여겼다. 고등학생 때는 GS25 스누피 커피 우유를 자주 사먹었다.
대학생이 되고 용돈도 늘어나고 알바를 하면서 소득도 늘어 커피 한 잔에 4000원 정도를 지출하는 것 정도는 부담도 되지 않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됐다. 그리고 입맛이 변하면서 단 맛에 부담을 느끼고 편의점 커피를 꺼리게 됐고, 라떼를 먹더라도 당분이 적은 프랜차이즈 커피점의 카페라떼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숏 사이즈 3600원, 톨 사이즈 4100원이라는 가격은 단순 아메리카노 한 잔의 가격이라기엔 조금 비싼 것은 맞다. 봄봄, 메가커피, 컨버스 등 1000원대로 맛있는 아메리카노를 제공하는 곳도 많다. 길거리에서 테이크 아웃으로 커피를 주문할 때는 그런 천원대의 아메리카노를 자주 사 먹기도 한다.
그러나 스타벅스는 그런 테이크아웃 전문점과 달리 보통 2~3층 정도로 많은 좌석을 가지고 있고, 기가급 무료 와이파이와 콘센트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카공족의 성지로 여겨지기도 한다.
1평 남짓한 가게에서 좌석이 없거나 테이블 한두 개 정도로 커피를 파는 곳과, 2~3층 정도의 넓은 좌석을 가진 매장에서 커피를 파는 것은 임대료나 인건비 부분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1평 남짓한 테이크아웃 전문점의 아메리카노에는 이런 지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스타벅스의 비싼 커피 가격은 이런 지대를 반영한 가격이라고 볼 수 있다.
보통의 독서실은 시간당 1000원 정도가 평균적인 가격이다. 스타벅스에서 평균적으로 약 2~3시간 정도 머무는 것을 감안할 때, 4100원이라는 가격은 커피 값 1100원과 좌석 이용료 3000원 정도로 정해진 가격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전혀 비싼 가격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연간 일회용 컵 소비량은 33억개에 달한다. 이 때문에 몇년 전 법 개정으로 매장 내 취식 시에는 일회용 컵을 제공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스타벅스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 플라스틱 빨때를 줄인다는 취지로 종이 빨대를 제공한다.
매장 내 다회용컵 사용으로 일회용 컵의 소비는 줄어들었지만, 이는 카페 근로자의 부담을 증가시켰다. 쌓여 있는 다회용 컵을 설거지해야하는 업무가 추가되었고, 설거지를 하느랴 자칫 새로운 주문의 음료 제공이 늦어질 수도 있다.
스타벅스에서 개인 텀블러 사용 시 300원 할인 또는 별 추가 적립 혜택을 제공해 주는 것은, 사실 환경 비용보다는 설거지 업무에 대한 비용으로 보는 것이 맞다. 매장용 다회용 컵을 사용해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 다만 근로자의 일이 늘어날 뿐.
대신 개인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록, 근로자의 설거지 업무 부담이 줄어들고, 이는 다른 메뉴의 더 빠른 제공이나 근로자의 휴식 시간이 생겨 능률이 향상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개인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은 근로자와 사용자, 소비자에게 모두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일이다. 게다가 소비자의 입장에서 개인 텀블러를 사용하면 남은 음료를 그대로 텀블러에 담아 가지고 나갈 수 있다. 특히 매장 내에 일회용 컵 이용이 금지되어 매장 내에서 취식 중 일이 생겨 카페를 떠나야 하는 경우 남은 음료를 일회용 컵에 옮겨 담아줘야 한다. 이 때는 기존에 사용된 컵을 설거지 해야 함과 동시에 새로운 일회용 컵이 사용되어 모두에게 좋지 않다. 이런 경우 텀블러를 사용하면 매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텀블러 하나를 생산하는 데 일회용 컵 17개 이상을 생산하는 것 정도로 환경에 영향을 끼친다. 단순히 텀블러를 사 모으는 것은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스타벅스의 친환경 정책은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매 시즌 '한정판', '선착순 판매' 같은 상술로 새로운 디자인의 텀블러를 계속해서 판매한다. 진정으로 환경을 위한다면 텀블러는 하나만 사서 가급적 오래 사용해야 한다. 진정 환경을 추구한다면 스타벅스는 계속해서 새로운 디자인의 텀블러를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종류로 텀블러를 판매해야 한다. 지금의 정책은 그냥 이윤 추구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가방 속에 텀블러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언제 카페에 갈 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 카페나 테이크아웃 전문점의 경우에는 개인 컵 할인이 없는 경우도 많지만, 그럼에도 개인 텀블러에 음료를 담아 달라고 하는 편이다. 텀블러는 딱 하나만 구매했다. 진정 환경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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